City people
무지개 다리
저편의 세상
녹음
Dream of the blue
Installation, Exhibition / 2025
Presented in
DMA 캠프 2025 ≪숯돌일지라도 아침을 고할지니≫, 2025, 대전창작센터, 대전
𝘿𝙈𝘼 𝘾𝘼𝙈𝙋 𝟮𝟬𝟮𝟱_𝙂𝙮𝙚𝙧𝙮𝙤𝙣𝙜𝙨𝙖𝙣: 𝙒𝙝𝙚𝙧𝙚 𝙩𝙝𝙚 𝘾𝙝𝙞𝙘𝙠𝙚𝙣 𝘾𝙧𝙖𝙙𝙡𝙚𝙨 𝙖𝙣𝙙 𝙩𝙝𝙚 𝘿𝙧𝙖𝙜𝙤𝙣 𝙍𝙞𝙨𝙚𝙨

계룡산은 호서 지방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근원지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앙과 염원의 중심지로 숭배되었으며 대전과 충청남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자연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 전시는 계룡산이 품은 자연과 인간의 깊은 유대감을 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시금 바라본다. 다섯 명의 참여작가들은 각기 다른 관점과 매체를 통해 산이 지닌 숨은 가치를 드러내며, 관람객들에게 계룡산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2025년 5월
쓸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 갖지 않은 땅이 있겠냐마는, 계룡산의 굵직한 역사를 들어보면 유독 고독한 느낌이 든다. 600여 년 전 조상들이 나라를 세울 때 계룡산 부근을 수도로 자리 잡으려 했으나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결국 다른 도시로 떠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600여 년이 흐른 현재, 나라의 보안을 책임지는 국방 수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국가 보안의 중심지이기에 사람이 사는 동네보다는 전시 상황이나 훈련을 위한 넓고 평평한 땅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평범한 날들에는 텅 비어 있는 계룡시의 너른 공터 사이를 지날 때면, 이곳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되려 낯설고 무심하다.
근 몇 백 년 동안의 계룡산은 이렇듯 선택받지 못하거나 비어 있는 고독한 도시인 것 같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600여 년이 흐르는 사이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계룡산 밑에 터를 잡아 자신만의 고유한 신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며 살아왔다. 신앙의 종류는 저마다 다르지만,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신에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올리며 지내 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독한 도시의 빈 공기를 금세 오밀조밀 채워 넣는다.
계룡산의 역사, 그러니까 계룡산에 얽혀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는 산 밑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화강암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 이유는 아마도 1억 5천만 년 전부터 존재해온 화강암이 이 지역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아서 였을 것이다. 계룡산과 같은 바위산은 그 아래 위치한 기반암의 틈 사이 저장된 막대한 양의 수분으로 식생을 키워냈고, 녹음으로 가득 찬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크고 작은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어왔다.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생명을 떠받쳐온 화강암의 시선으로 계룡산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에 때로는 고독했던 인간의 역사도 화강암에게는 그저 깊은 꿈결 중에 실눈 뜬 찰나 같을 것이다. 매 순간 애쓰며 간절한 기도로 끌고 온 우리 삶의 이야기들도 화강암의 긴 세월 속 기쁘고 어여쁜 한순간일 것 같다.
계룡산의 생명을 품어온 화강암 지대에는 현재 거대한 채석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땅 밑 80m 상당의 깊이에서 채취한 화강암을 주로 취급하는데, 이 화강암은 필요에 맞게 재단되어 적재적소에 알맞게 쓰인다. 사용되고 남겨진 석재는, 나에게 언제나 또 다른 기능,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설레는 무엇이다. 나는 공장 외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회색빛 돌무더기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다 쓰이고 버려진 석재 조각들이 무작위로 쌓여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나의 작업은 이 버려진 돌무더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니, 사실은 1억 5천만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 억겁의 시간을 가로질러 땅 위로 올라온 화강암 조각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이곳저곳에 단디 쓰이고, 남은 것들은 다시 작게 갈려져 땅에 흩뿌려 지길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잔뜩 쌓여 버려진 그 조각들에 찬찬히 눈길을 준다. 눈으로 돌들을 하나씩 쓰다듬으면서, 화강암이 건축자재로서 쓰임을 끝내고 난 후 펼쳐 보일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해 상상한다. 땅 밑의 거대한 화강암이 가볍게, 자유롭게 꿈꾸는 땅 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하나씩 하나씩 고른 돌을 주워 나른다.

글: 김소진















